돌아가지 못하는 시간들 속 우리
네번째 페이지 |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도 돼.



너랑 헤어지고 나서

정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만큼 힘들고 지쳐서

다 그만하고 싶다라고 생각하고 정말 극단적으로 생각해보기도 했는데

그런 것도 생각밖에 못하겠더라고,

내가 정말 여기서 끝내면 다 잊어버리니까.

정말 별짓을 다 하면서 널 잊으려고 노력했는데,

결국은 안되더라고.

너랑 나눈 추억이 너무 선명하고 예쁘게 내 마음에 남아있어서

그걸 한번에 지울 자신이 없었나봐.

나만 널 못 잊은게 아니길, 너도 날 똑같이 그리워하고 있길

아니 어쩌면, 나보다 더 그리워하고 있길 바랬어.






전정국
나도 너한테 잘 지냈냐는 말을 해야 되냐.


양유진
…여전하네ㅎ.


양유진
좀 반갑게 맞이해주면 안되냐.


정여주
야, 너 주문 안받고 뭐해


전정국
아, 누나가 주문 좀 대신 받아줄래요?


전정국
저 갑자기 같이 사는 형한테 전화가 와서.


정여주
...아, 그래, 얼른 다녀와.



정여주
주문 도와드릴까요?


양유진
아니요.


정여주
…네?


양유진
저한테는 한번도 저렇게 다정하게 안 말해주던데, 그쪽한테는 다정하게 하나봐요, 전정국?


양유진
그쪽 좋아하나 보네요.


정여주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정국이 좋아하시나 봐요?


정여주
근데 어떡하죠_ 지금까지 이 카페에 정국이 좋다고 오신 분들중에


정여주
내가 봤을 때 그쪽이 제일 별로인 것 같은데.


양유진
상관 없어요, 그건 정국이가 판단하는 거니까.


양유진
근데, 마치 저랑 정국이 사이를 아는 것 같이 나한테 얘기하네요?


양유진
아님, 말투가 원래 그래요?


정여주
아니요, 저 그쪽 오늘 처음 봤고요


정여주
제가 원래 처음 봤는데 예의 없게 구는 사람을 좀 싫어해서ㅎ


정여주
말투가 좀 날카로웠네요, 죄송해요.


정여주
주문 도와드릴게요.


양유진
…아니요, 오늘은 그냥 오랜만에 정국이 얼굴 보러 온 거예요.


양유진
다음에 볼 수 있으면 또 봐요.


정여주
굳이 또 보고싶진 않지만, 마주친다면 보겠죠.


정여주
안녕히 가세요_


그렇게 유진이 나가고,

여주는 유진의 수상함에 문 쪽을 한참 쳐다본다.



전정국
갔어요?


정여주
아, 깜짝이야


정여주
넌 왜 그렇게 뒤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냐


전정국
그래서, 싫어요?


정여주
어, 싫어.


전정국
저 여자가 누나한테 이상한 소리 안했죠?


정여주
…누군데, 저 여자.


전정국
있어요, 그런 게.


전정국
오늘 퇴근 2시간30분 남았다ㅎ




전정국
누나, 오늘 나랑 같이 집에 갈래요?


정여주
너랑?


정여주
내가 왜.


전정국
…아니, 그렇게 한 번에 찰 필요는 없잖아요...


정여주
알겠어


정여주
왜 나랑 같이 가고 싶은데?


전정국
할 얘기가 있어요.


전정국
누나한테 고민상담 좀 하려고요_


정여주
무슨 고민인데?


전정국
지금 얘기할 순 없죠, 얼른 일해요_


띠리리리리 -


전정국
아, 왜 자꾸 전화질이야.


정여주
누군데, 얼른 가서 받고 와_


전정국
네




전정국
* 왜 또


김석진
* 괜찮냐


김석진
* 갔어?


전정국
* 어, 갔어


전정국
* 근데, 어떻게 알았냐


전정국
* 양유진 한국 온 거.


김석진
* 이 형님이 집에선 이래보여도 밖에서는 모든 정보를 다 손 안에 쥐고있는 사람이야 -


김석진
* 너 내가 아까 전화해준 덕분에 산 거다, 그거 잊지 마.


김석진
* 양유진 보면 정색만 하고 말은 하나도 못하는 거 다 안다.


김석진
* 양유진 이제 한국에서 계속 살 거 같다던데.


김석진
* 마주치지 않게 조심해, 니가 일하는 카페도 이젠 아는 거잖아.


전정국
* 내가 알아서 할게, 아깐 좀 고마웠다.


전정국
* 끊어_ 나 일해야 돼.


김석진
* 누가 형인지.


전정국
* 끊는다 -

탁 -


전정국
정보를 어디서 구해오는 거야 도대체, 하여튼 조심해야 돼 이 형은.


전정국
이러니까 여자친구가 없지.




김석진
아 - 왜 귀가 간지럽지.


김석진
전정국이 또 내 욕하나.


김석진
하여튼 전정국, 그렇게 웃어른을 공경할 줄 모르니까 여자친구가 없지.


김석진
입에 욕을 달고 살아요, 아주.



김석진
…그나저나, 양유진이 한국으로 왔네.


김석진
정국이한테 그런 짓 해놓고 아무런 감정도 없나.


김석진
양심이 없는 건가, 생각이 없는 건가


김석진
어떻게 다시 얼굴을 보이냐.




전정국
어우, 누나 그거 무거워요 -


전정국
저 주세요.


정여주
됐어, 나 혼자 할 수 있어


전정국
또 혼자 고집 부리다가 사고치지 말고요_


전정국
저 주세요, 얼른.


정여주
아, 그럼 내가 이거 할게


전정국
어어...그것도 무거운데.


전정국
누나는 홀 정리 해주세요.


정여주
홀 아까 매니저님이 하시는 것 같던데_


전정국
홀 혼자 하시면 힘드실 거예요, 같이 가서 해주세요.


정여주
아, 그래.





정여주
매니저님, 이거 쓰세요.

김매니저
아, 전 장갑 안쓰고 해도 돼요.

김매니저
여주씨가 끼고 식탁 좀 닦아주세요.


정여주
네_



김매니저
여주씨 요새 계속 정국이랑 같이 집 가시던데,

김매니저
둘이 무슨 사이예요?


정여주
매니저님, 그런 얘기하시는데 왜 입꼬리가 씰룩 거리시고,


정여주
눈빛은 왜 그러시죠...?

김매니저
아니_ 맨날 둘이 끝나고 같이 어딜 계속 가길래,

김매니저
어딜 그렇게 맨날 같이 가나 궁금했어요.

김매니저
어디를 그렇게 가요, 맨날?


정여주
같이 밥 먹어요.

김매니저
혹시, 여주씨도 정국이 좋아해요?


정여주
ㅇ,아니요. 그냥 고마운 일이 있기도 하고, 저녁 맨날 혼자 먹어야 되니까아….

김매니저
왜 당황해요, 그냥 물어본 건데_


정여주
질문이 이상하네요, 전 다 했으니까 이제 주방 일하러 갈게요_

김매니저
주방에 정국이 있어요, 둘이 같이 설거지 해주세요~


정여주
…진짜 조용히 하세요.

김매니저
농담이에요.





전정국
뭐야


전정국
누나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개요...?


정여주
더워서 그래, 더워서.

덥다는 여주의 말에 설거지 하던 장갑을 벗어 바로 여주에게 손부채질을 해주는 정국.


정여주
…안해줘도 돼.


전정국
덥다면서요_ 근데 왜 이걸 해줘도 얼굴이 안 가라앉지?


정여주
됐어, 내가 알아서 할게.



점장님
퇴근 30분 남았는데, 손님이 더이상 안올 것 같네 -

점장님
하고있던 일들만 마무리 하시고, 다들 퇴근하세요_

김매니저
감사합니다_


전정국
감사합니다, 점장님_


정여주
감사합니다.




전정국
설거지 끝,


전정국
이제 갈까요, 누나?


정여주
가자.



전정국
저희 퇴근합니다_ 내일 봬요.

점장님
잘가요 -

김매니저
내일 보자.


정여주
안녕히 계세요_





전정국
누나는 진짜 연애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정여주
응, 전에 만났던 사람이랑 헤어지고 나서 너무 힘들었어.


정여주
그래서 또 연애하는 게 무섭기도 하고, 그냥 이별 자체가 무섭기도 하고.


정여주
너는 왜 여자친구 안 만나?


전정국
그동안은 안 만든 게 맞는데


전정국
요새는 못만드는 것 같아요.


정여주
전에 니가 말했던 그 사람이 니 마음을 몰라줘?


전정국
모르는 건지, 눈치가 없는 건지, 모르는 척하는 건지_


전정국
잘 모르겠어요.


전정국
그 사람한테 은근슬쩍 힌트를 줬는데, 그 사람은 모르는 것 같아요.


정여주
혹시


정여주
그 사람이 아까 봤던 그 여자야?


정여주
아까 니가 그 여자 보고 엄청 심각하게 긴장하고 있던데.


정여주
니가 좋아한다는 그 여자가 그 사람이야?


전정국
그 사람이요...? 아, 설마 양유진이요?


정여주
이름이 양유진인지는 모르겠는데, 아까 니가 같이 사는 형 전화 받으러 갔을 때 카운터에 있던 여자.


정여주
그 여자야?


전정국
솔직하 말할까요?


전정국
양유진 제 전 여자친구예요.


전정국
근데, 갑자기 연락이 끊기고, 집에 찾아가도 없더니


전정국
오늘 갑자기 나타난 거예요.


전정국
저도 전해 듣긴 했는데, 저랑 만날 때 갑자기 유학을 다녀왔다고 했나_


전정국
그래서 연락도 끊기고, 완전 잠수이별 당했어요.


전정국
어제 한국에 와서 저 보러 왔다고 하더라고요.


전정국
근데 뭐, 저 걔 이제 안좋아해요.


전정국
누나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에요, 오해하지 마요.


정여주
오해를 내가 왜 해_


전정국
그럼 뭐 다행이고요.


정여주
정국아


정여주
아니겠지만 혹시 아직도 그 여자 때문에 힘들고 지치면


정여주
그냥 나한테 얘기 해.


정여주
널 대신해서 울어주진 못해도, 너 고민을 반 정도는 털어줄 수 있어.


정여주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




전정국
아까 제가 누나한테 고민상담 할 거 있다고 했던 거 기억 나요?


전정국
그거 지금 말할게요.







전에 내가 너한테 힘들면 말하라고 했었네.

지금은 니가 누구한테 니 힘듦을 털어놓고 있을까.

이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는다는 게 조금 서운하네.


아니, 사실은 많이 서운해.

왜 너와 함께 쌓았던 추억은 무너지지가 않는 걸까.

그게 무너진다면 마음은 아프겠지만, 그게 더이상 보이지 않는다면 조금이라도 덜 아플텐데.




나만 잊지 못하나 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