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남이 되고 오히려 더 좋아보여.
25화. 한 번 겪어봤으니까.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6개월이 아닌 6년을 만났지만 헤어지는 건 한순간이었고

4년이라는 극복의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6년동안 쌓아왔던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을 씻어내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그래서 4년 후인 지금, 서로를 잊지 못했었던 마음을 정리하고 수많은 커플 중 하나로 살고 있다.




김태형
여주야 나랑 사귈래?



넌 남이 되고 오히려 더 좋아보여.




박여주
…괜찮을까.

박여주
사람 너무 많은데...?


김태형
우리 그냥 시켜먹을까...?

박여주
응_ 어쩔 수 없겠다.

박여주
…야시장 오고 싶었는데.


김태형
에이, 괜찮아_ 어차피 나중에 또 올 거잖아.


김태형
우리 그냥 산책 갈까?

박여주
…산책?


김태형
가자ㅎ



박여주
우와_ 이런 데 어떻게 알았어?


김태형
음, 나의 이런 천재적인 순발력을 발휘했지.

박여주
…아, 그래_ 맞아.

박여주
우리 오빠 천재지_ 그치.


김태형
…영혼을 좀 담아서 해줄래?


김태형
예전에는, 어? 막 내가 이런 말 안해도 똑똑하다고 - 멋있다고 - 막 했으면서.

박여주
그건 예전이고.


김태형
그래서 지금은 그때와 좀 다르다? 사랑이 식었다?

박여주
음_ 글쎄.


김태형
…글쎄? 너 앞으로 나한테 30분동안 말 걸지 마.


김태형
그 사랑 다시 데워와.

박여주
아, 장난이지_ 그냥 귀여워서 장난 한번 해봤어.


김태형
하여튼 예전이랑 달라진 게 없어_ 발전이 없어, 너는.

박여주
그래서, 내가 진부해?


김태형
아니? 귀여워.

박여주
거짓말_ 예전이랑 많이 다르지?


김태형
너 예전이랑 똑같아_ 맨날 틱틱거리는 것도 똑같고, 괜히 자신감만 넘치고, 그러다가 지면 시무룩하고.


김태형
변한 거 없는데?

박여주
…칭찬이야?


김태형
사람이 한결 같다는 거야_

박여주
…말을 좀 더 달달하게 해줄 수는 없어?

박여주
맨날 이상하게 말해.

박여주
만난지 2년정도 됐을 때는 멋있는 말도 하고, 똑똑한척 엄청하더니.

박여주
다 뻥이지?


김태형
…그건 그냥 너한테 멋있어 보이고 싶었던 거야.


김태형
근데 만나면 만날수록 내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싶고, 너도 그런 내 모습을 좋아하길래_ 포기했지, 멋있는척.


김태형
귀엽다며_ 맨날 바보 같다고 놀렸잖아.

박여주
나는 원래 잘생긴 바보 좋아해ㅎ

박여주
음_ 근데 요새는 좀 달라.

박여주
잘생기고 멋있는 사람이 더 좋은 것 같기도...?


김태형
아_ 그러세요? 그럼 멋있는 사람 만나세요.


김태형
저는 멋있는 편이라기엔 너무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냥 바보로 살겠습니다_

박여주
또, 봐, 또 삐졌네.

박여주
진짜 유치원생이야?


김태형
아하, 이런 정신연령이 나이에 맞지 않게 낮은 저는 이만 먼저 가보겠습니다.


김태형
아이쿠,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네요? 그럼, 안녕히계세요_


박여주
아, 어디 가는데 -


김태형
아유, 뭐 박여주씨께서 신경쓰실 만큼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김태형
그럼 이만 물러날게요 -

박여주
아아_ 알겠어.

박여주
니가 원하는 게 뭐야.


김태형
원하는 거라뇨_ 저는 그냐앙_ 박여주씨께서 저한테 가벼운 선물 하나정도만 바랄 뿐이에요.

박여주
…뭐지.

박여주
굳이 뭔지 물어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아.


김태형
아, 뭔지 알아?

박여주
어_ 근데 일단 말해봐.


김태형
니가 생각하는 그거 맞아.

박여주
…몇번.


김태형
음_ 5번?

박여주
앞으로는 없다.

조심스럽게 태형의 볼에 짧은 입맞춤을 해주려는 여주.

갑자기 태형이 고개를 여주쪽으로 돌려버린다.

결국 볼에 입맞춤을 한 게 아니라는 거지.

박여주
…뭐하냐.


김태형
흐흫.

박여주
…앞으로 30분동안 나한테 말 걸지 마.


김태형
너 도대체 이런 건 언제 익숙해질 거야_

박여주
아, 나 원래 이런 성격 아니었는데_ 이게 다 오빠 때문이잖아.

박여주
왜 도대체 열심히 살고 있는 애를 이렇게 만들어.


김태형
난 잘못한 거 없지_ 그냥 니가 날 좋아한 거야.

박여주
와, 진짜 웃긴다.

박여주
오빠 기억이 안 나?


김태형
글쎄ㅎ


김태형
아, 이제 들어가자.


김태형
들어가서 밥 먹자.

박여주
뭐 먹을 건데?


김태형
니가 먹고 싶은 거 먹자ㅎ

박여주
…아무래도 바다를 왔으니까 회 먹을까?

박여주
호텔에서 바다가 안보이니까 좀 아쉽긴 한데_ 뭐, 그래도 좋아.


김태형
그럼 호텔 거의 다 도착했을때 주문할까? 아님 사서 들어갈래?

박여주
음_ 사서?


김태형
너 물고기 징그럽게 생겼다고 싫어하잖아.


김태형
…괜찮겠어?

박여주
에이, 뭐 어때_ 그거 다 어릴 때 얘기지.

박여주
야시장 말고 수산물 시장이나 가자. 우리한테는 그게 맞아.



박여주
오_ 역시 놀러오니까 스트레스가 풀리네.


김태형
그러게ㅎ


김태형
앞으로 더 자주 오자.

박여주
자주 올 수 있으면? 오빠가 너무 바쁘잖아.


김태형
내가 시간을 맞추면 되지_


박여주
나는 이런 데 오면 오빠랑 나랑 처음 만났을 때 생각 나더라.


김태형
…말하지 마.


김태형
진짜 오글거려.

박여주
오빠는 우리가 처음 만난 게 오글거려?

박여주
진짜 실망이다.


김태형
아니, 그게 오글거리는 게 아니라_ 그냥 그때 내가 했던 말들이 너무 좀 그래.

박여주
그치, 그럴 수 있지

박여주
그때 오빠가 좀 촌스러웠어야지.


김태형
야, 너는? 너도 장난 아니었어_

박여주
뭐래, 나 인기 많았어.

박여주
오빠가 나한테 학식 먹으면서 고백했잖아.

박여주
참 색달라_ 음, 김태형다워.


김태형
아니 내가 원래 거기서 하려던 게 아니었는데_ 그냥 니가 먼저 떠보니까


김태형
그냥 얘기해버렸지.

박여주
근데 솔직히 그때 좀 귀여웠지_



김승태
여주야, 너 김태형이라고 알아?

박여주
네? 아, 아니요.

김승태
그래? 그럼 걔랑 밥 좀 같이 먹어줘_ 쟤 맨날 혼자 다녀.

박여주
…선배는요?

박여주
저 혼자만 같이 먹어요?

김승태
아, 나는 학식 별로. 그럼 수고해라 -

박여주
…아.

아 뭐야, 말 한번도 섞어본 적 없는데



박여주
…안녕하세요.


김태형
아, 안녕

박여주
아니, 그, 승태선배가 선배랑 같이 밥 좀 먹어달라고 하셔서요.


김태형
알아.

박여주
…앉아도 되죠?


김태형
같이 밥 먹는다며, 서서 먹을 거야?

아 말하는 게 왜 저래.

박여주
앉아서 먹어야죠, 네.


박여주
…무슨 과예요?


김태형
경영학과.


김태형
넌 서양학과지?

박여주
오, 제가 말한 적 없는데?


김태형
너 나랑 같은 동아리잖아.

박여주
…아.

박여주
근데 선배는 친구 없으세요?

박여주
저랑 말 한번도 해본 적 없으시잖아요.


김태형
너랑 친해지고 싶어서.


김태형
김승태한테 부탁했어, 나랑 밥 좀 같이 먹게해달라고.

박여주
…선배 엑스맨이에요?

박여주
그러지 않고서야 굳이 저랑 친해지실 필요가 없지 않나_


김태형
엑스맨이 뭔지도 모르고, 그냥 너랑 축제 때 MC하려고.

박여주
아아_

박여주
네?


김태형
너 예쁘잖아



김태형
너 예뻐, 그러니까 나랑 같이 MC하자.

박여주
아니, 저기_ 저 아직 1학년인데요..


김태형
1학년이면 뭐 어때_ 그냥 좋으면 하는 거지


김태형
할 거지?

박여주
아, 네..

네? 방금 네라고 했냐. 뭐래, 당장 아니라고 해.

박여주
아, 아 저,


김태형
알겠어. 그럼 학식 다 먹고 동방으로 천천히 와_ 선배들 있다고 급하게 오다가 체하지 말고.



그렇게 강제로 축제 준비하고 늦게까지 동방에서 그 선배랑 연습하고

그러다보니까 자연스럽게 맨날 학식을 같이 먹게 됐지.




김태형
너 이거 좋아하지?

박여주
네. 저 맨날 그거만 먹어요ㅎ


김태형
아 그래? 그럼 나랑 맨날 이거 먹으러 갈래?

박여주
네_

박여주
네?


김태형
어?


김태형
아니, 그, 그러니까 니가 이거 좋아하니까 내가 맨날 동방에도 갖다놓고, 나중에는 밖에서 먹고


김태형
축제 준비하면서도 먹고, 축제 진행하면서도 먹고..

박여주
네?


김태형
어_ 그니까,


김태형
여주야 나랑 사귈래?

박여주
...여기서요?

박여주
밥 먹다가..?


김태형
어어_ 그럼 어디서 다시 할까?

박여주
어, 아니요_ 그냥,

박여주
제가 생각을 좀 해봐도 될까요..?


김태형
아아_ 그래, 당연하지.


김태형
천천히 대답해줘도 돼, 어.


김태형
...그럼 나 먼저 갈게?

박여주
아, 네, 안녕히 가세요


박여주
미쳤나봐_




김지수
너 내일이 축제지?

박여주
응_ 아 근데 어떡하지.


김지수
왜, 떨리냐?

박여주
아니, 넌 몰라도 돼_


김지수
그럼 말을 하지 말던가.


김지수
너 김원우랑은 좀 어때?

박여주
김원우? 아, 걔 진짜 별로.

박여주
3일 전인가, 나한테 고백했었는데_ 나 좋아하는 사람 있다고 하고 그냥 내가 먼저 갔어.


김지수
에이, 너무 아깝다. 김원우도 은근 인기 많은데.

박여주
별로.


김지수
근데 김태형 선배는 니가 신방과도 아닌데 왜 굳이 너한테 MC를 시키냐.

박여주
...아, 맞다.

박여주
야 교수님이 내 이름 부르시면 니가 대신 대답 좀 해줘

박여주
내가 밥 살게, 진짜 급한 일이야.


김지수
아, 좀 적당히 해라_

박여주
사랑한다.



박여주
- 선배 어디예요?


김태형
- 어, 나 지금 학교.

박여주
- 학교 어디요? 저 지금 선배한테 할 말 있는데.


김태형
- 나 지금 학교 정ㅇ.


김태형
- 저기있네.

박여주
- 네?



김태형
박여주. 무슨 일이야, 급한 일이야?

박여주
선배 다음 수업 있어요?


김태형
아니, 나 이게 마지막이었어.


김태형
왜, 급한 일이야?

박여주
아니요, 저, 그때 선배가 저한테 한 고백, 그거에 대한 제 답변이요.


김태형
…여기서?

박여주
그럼 어디서?


김태형
아니야, 그냥 여기서 해.


박여주
...좋아요.

박여주
저 선배랑 만날 거예요.



김태형
가자ㅎ

박여주
...어디를?


김태형
학식 먹으러.


박여주
으, 진짜 오글거린다.


김태형
귀여웠네_

박여주
...지금은 아니라는 거야?


김태형
지금이 훨씬 더 귀엽지.

박여주
아주 얼굴 전체에다가 써놓지, 거짓말이라고.


김태형
에이, 아니야.

박여주
맞잖아_


김태형
아니, 아니야.

박여주
굉장히 기계적이네.


김태형
조용히 하고_ 빨리 가자.

박여주
니가 뭔데_


김태형
니, 너, 야 금지.

박여주
김태형_


김태형
그건 좀 귀여우니까 인정.

박여주
하여튼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해요.


김태형
불만이야?

박여주
아니야_ 너 하고 싶은대로 해.


김태형
빨리 가자 -




김원우
미술학원이랑 전시회 미팅 날짜는 잡으셨나요?

직원
네, 방금 그쪽 원장선생님이랑 날짜 잡았습니다.

직원
내일 4시쯤 뵙기로 했어요.


김원우
네, 수고하셨어요_


김원우
우리 이 전시회 무조건 성공시켜야됩니다.

박대리
팀장님 혼자 가실 건가요?


김원우
네. 저랑 그쪽 담당자분이랑만 만나겠습니다.

박대리
거기 담당자분께서 원장선생님이 아니라 다른 여성분이시라고 합니다.


김원우
알고 있습니다. 저랑도 아는 분이십니다.

박대리
그래도 두분씩 해서 미팅을 하시는 게 맞지 않을까요?


김원우
아니요, 저희 둘이 만나서 얘기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김원우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박대리님.



박여주
...오빠 이런 데 와봤어?


김태형
응, 예전에.

박여주
아, 나 진짜 무서워.


김태형
그럼 빨리 사고 나가자.


김태형
아님 나가 있을래?


김태형
내가 빨리 사서 나갈게.

박여주
아니야, 그냥 같이 있자.


김태형
그럼 빨리 사 가지고 나가자.



박여주
와_ 나 진짜 물고기랑 아이컨택했어.


김태형
그럼 그냥 시켜먹지_

박여주
됐어, 그냥 빨리 호텔 들어가서 먹고 자자.

박여주
나 내일 출근해야돼_


김태형
내일 데려다줄까?

박여주
나 학원으로 출근하는 거 아니고 어디 회사던데.

박여주
전시회 미팅 가야되잖아.


김태형
그니까, 데려다줄게.

박여주
음_ 그래ㅎ


박여주
오빠, 진짜 완전 뜬금없을 수 있는데_

박여주
우리 그냥 결혼할래?


김태형
오_ 말 그대로 진짜 뜬금없다.


김태형
근데 뜬금없이 좋네.


김태형
그래, 하자.

박여주
오빠 회사 출근하면 지금처럼 만나기는 어렵잖아_

박여주
그냥 같이 살면 맨날 볼 수 있으니까.


김태형
걱정하지 마, 한 번 겪어봤잖아_ 그러다가 어떻게 되는지.


김태형
이제 다시는 외롭게 안 할게.

박여주
약속.


박여주
아_ 배고프다.

박여주
빨리 가자.


더웠는데 갑자기 옆구리가 시리네.